광고

[데스크칼럼] 숲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

충청인 | 기사입력 2011/08/08 [22:34]

[데스크칼럼] 숲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

충청인 | 입력 : 2011/08/08 [22:34]

푸르름이 더해가는 8월, 숲에 들면 아기자기한 즐거움에 빠져든다. 여뀌풀이 무성하게 도랑을 덮고, 길옆으로 망초꽃이 환하게 반긴다.

땅심을 한껏 받은 억새풀, 세죽이 키자랑을 하고 골짜기의 물은 숨어 흐르며 생명수를 제공한다. 새들은 각자의 지저귐으로 제목소리를 내나 결코 소란스럽지는 않다. 상수리나무, 오리나무, 소나무 들 허리께로 칡덩굴, 담쟁이가 감아 올라가고 심줄처럼 뻗어 내린 뿌리들이 여기저기서 밟힌다.

낙엽 밑으로는 지렁이가 부지런히 깨끗한 흙을 토해내고 개미는 연신 먹이를 물어 나르고 있으리라. 숲은 더불어 산다. 키가 큰 나무는 작은 나무에게 발치를 내주고, 곧은 것 곁에서 굽은 가지도 함께 하고 가늘고 굵은 것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대거나 얽혀 살고 있다. 거기다 산 것과 죽은 것마저도 서로 주고받으며 비바람을 벗 삼아 산다.

들짐승 날짐승들이 산에서 살아가려면 싸움도 있지만 냉정한 원칙이 서 있다. 이처럼 숲은 하나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로운 것과 유익한 것이 있고, 힘센 놈과 약한 놈,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 들이 함께 하는 곳이다. 이롭고 강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진 것이 숲이다.

한 가지만 고집하느라 다른 것을 파괴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숲이 아니다. 숲은 모든 것을 허락하고 또 스스로 정제한다. 아름답고 미운 것, 좋고 나쁜 것, 강하고 약한 것, 산 것과 죽은 것, 모두 허락된다.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빛을 내는 숲이 아름답다. 우리 현실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요즈음 각종 매체를 통해 보여지고 들려오는 세상은 늘 불안하다. 위기의식에다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어 미래가 두렵다.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지는 목소리들로 정신이 혼란스럽다. 마음들이 얼마나 급해지고 절박해졌는지 사는 것이 팍팍하다. 강물이 느리게 흐르면서 서서히 모습을 바꾸고, 숲도 서두르지 않으면서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가. 내 것만을 고집하다보면 이웃이 피해를 보고 이웃이 망하면 그 여파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목소리가 뜨겁다. 아이가 운다고 다 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보채는 아이만이 아이가 아니다. 우는 아이만 거두게 되면 울지 않는 아이는 늘 밀려나게 된다. 잘 듣기 위해 두 개의 귀가 있고, 말을 아끼라고 하나의 입이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언제나 약자가 소외되기 쉽다.

억울해서 하는 한풀이가 아니라 성숙한 자세로 각자의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하겠다. 들어줘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우려야 할 것이다. 무릎을 낮추고 눈을 맞추며 들어 주라,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으로. 숲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숲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에 최선을 다하면서 제소리를 높이기보다는 다른 악기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우리며 자기의 소리를 적당히 줄이고 높여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가는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서로 다른 모습과 소리를 내지만 은은하게 살아 숨 쉰다. 그렇지 않은 소리는 소음이다. 조금 짬을 내서 숲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여 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숲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으리라.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