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충청인) 김수환 기자 = 축제를 지키기 위해 단식까지 나섰던 세종시가, 정작 행정수도의 근간이 흔들리는 순간에는 침묵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 국정과제로 공식화되면서, 세종시의 정체성과 위상이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
불과 몇 달 전, 세종시는 정원박람회와 빛 축제 예산이 시의회에서 삭감되자 최민호 세종시장이 단식에 들어갔다. 도시의 문화 자산과 시민의 자긍심을 지키겠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러나 해수부라는 상징적 부처가 이탈하려는 지금, 그때의 결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최민호 시장은 대통령에게 해수부 이전 지시의 철회를 공식 요청했다. 이전이 도시 정체성과 경제, 그리고 시민의 예측 가능한 삶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예산 삭감이라는 국지적 사안 앞에서 단식을 택했던 과거의 결단에 비하면, 이번 대응은 시민의 기대에 다소 못 미친다. 이 차이가 남긴 여운은 생각보다 크다.
세종시 지역 국회의원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 사람은 전담 기구만 이전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또 다른 이는 법적 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부 지방의원은 “모든 걸 세종이 가져야 하느냐”는 현실론을 꺼내 들었다. 다양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책임의 무게는 분명해야 한다.
해수부 이전은 단지 하나의 부처가 옮겨가는 문제가 아니다. 세종시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국가적 약속의 결과로 태어난 도시다. 그 첫 문장을 지우기 시작하면, 다음 줄은 더 쉽게 사라진다. 해수부 다음은 어디인가. 이 질문은 가정도,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정치는 늘 선택을 요구하지만, 시민은 그 선택의 이유와 일관성을 기억한다. 정원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정치와, 수도 기능의 상징이 조용히 떠나는 순간에 물러선 정치는 결코 같은 무게로 평가되지 않는다.
세종은 다시 갈림길에 섰다. 수도 기능을 지켜내며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약속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정책의 변방으로 조용히 밀려날 것인지. 그 선택은 결국 시민의 몫이지만, 그 길을 비추고 지켜야 할 책임은 정치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난 외침도, 보여주기식 몸짓도 아니다. 우리는 어디서 시작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차분히 되묻고, 다시 답해야 할 시간이다.
정원 하나를 지키겠다는 그때의 진심이, 이제는 해수부라는 행정수도의 상징 앞에서도 분명하게 증명되길 바란다. 정치가 그 진심을 잊지 않았다면, 지금이야말로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저작권자 ⓒ 뉴스충청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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