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충청인) 김수환 기자 = 과학기술특별시 대전시가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국가 연구개발 인프라와 도시의 정체성이 정치적 판단 하나로 붕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그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 법안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을 경남 사천으로 이전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여파는 단순히 기관 이전 차원을 넘어, 대전이 수십 년간 일궈온 과학도시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항우연과 천문연은 단순한 국가기관이 아니다. 대덕연구단지를 지탱해온 핵심축이자, 대한민국 우주기술의 역사와 연구 역량이 응축된 상징이다. 그런데도 이를 “산업현장과의 거리”라는 모호한 논리로 통째로 옮기려는 시도는, 과학기술 전략을 이념이 아닌 정치 균형 논리로 다루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
과학이 자라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쌓아온 연구 생태계와 인프라가 필요하다. 수천 명의 연구자, 협력 기업, 대학, 병원, 창업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합 시스템이 뿌리내려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무시한 채 행정구역 하나 바꾸듯 이전을 추진한다는 건, 마치 뽑아낸 나무를 다른 땅에 심고도 같은 열매를 기대하겠다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건, 이러한 법안이 아무런 공론화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은 투명성과 지속성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기관이 이동한다면, 과학은 더 이상 ‘국가 미래’가 아닌 ‘정치의 도구’가 될 뿐이다.
만약 우주항공청 설립과 관련 기관 이전이 정말 국가 전략을 위한 것이라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은 절차의 정당성과 지역 간 신뢰 회복이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 과학을 일궈온 연구자들에게 아무 설명 없이 “자리를 옮기라”는 것은 단순한 배치 변경이 아니라, 그들의 노력과 헌신을 짓밟는 행위다.
지금 대전은 국가 과학기술의 심장이다. 이 심장을 지탱해온 연구기관들이 하나둘 이전 대상이 되는 순간, ‘과학도시 대전’이라는 정체성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 사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정치가 과학을 흔드는 순간, 미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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