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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갤러리, 손수광 첫 유작전 개최…미공개 70여점 선보여

충청인 | 기사입력 2016/09/21 [09:56]

아라리오갤러리, 손수광 첫 유작전 개최…미공개 70여점 선보여

충청인 | 입력 : 2016/09/21 [09:56]

[천안=뉴스충청인]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2016년 9월 20일부터 2017년 1월 8일까지 한국 근현대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작가 손수광(1943-2002)의 첫 번째 유작전을 개최한다. 본 전시는 작가 살아 생전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과의 오랜 인연과 예술적 교류를 기림과 동시에, 사후에도 지속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지지와 애정에 기반해 마련되었다. 또한 구상화 전통이 점점 퇴색해가는 동시대 한국미술계에, 잊혀져가는 이름인 구상화가 손수광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구상화에 대한 담론을 재기하고자 준비된 전시이다. 손수광의 작고 이후 최대 규모의 전시가 될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사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미공개 작품들을 포함해 파리 거주 시절(1979~1982)부터 귀국 이후 우이동 화실과 해인사 작업실 등지에서 제작한 작품 등 70여 점이 소개된다.

대상의 이미지를 근간으로 한 재현적 회화는 조형 언어에 있어 중요한 어휘이자 문장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1910-1945)에 서구 미술이 수용되어, 재현에 대한 한국식 사유가 정치적 왜곡 속에 굴절되어 정착되었다. 해방 이후 재현에 바탕한 구상미술은, 일제시대 활약했던 원로화가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형성된 제도권 속에서 구축되었다. 즉, 50, 60년대 구상회화는 아카데미즘을 계승하고 사실주의 회화 경향을 드러냈다. 하지만 50년대 말 화단을 휩쓸었던 엥포르멜 열기와 60년대 이후 모더니즘의 전개 속에서 구상은 추상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당대 한국 미술에서 서양화는 구상과 비구상이라는 이원적 개념 하에 편협하게 논의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등장한 손수광의 회화는 단순히 당대 서양화 전통에 기반한 재현적 구상 회화를 반복하기보다는, 서양화 전통 위에 작가 특유의 인간적 감수성을 강조하는 표현적 형상을 더했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그가 주로 다루는 풍경, 누드, 인물은 작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섬세한 뉘앙스가 더해져 표출된다. 그리고 작가가 사용하는 색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담아내는 유용한 수단, 즉 작가가 예민하게 감지한 두렵고 공허한 인간 실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손수광 회화 속 조형 패턴은 인물, 정물, 풍경과 같은 형상에서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회화에 대한 부단한 천착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품은 현대적 구상 회화의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되었다. 그의 회화 작품의 ‘대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상이 아니라, 대상 너머의 보이지 않는 생각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기존 구상회화와는 다른 변화를 보여왔다. 그 점에 대해 손수광은 “내 그림은 일종의 오브제로서 마음속에 잔재해 있는, 인간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손수광의 1970-90년대 회화작품을 집약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사후 처음 공개되는 누드 작품 시리즈를 소개한다. 본 전시를 통해 작가가 활동했던 당시 구상회화의 오랜 패러다임과 관념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1970-90년대 한국에서 꽃피웠던 특정 화풍과 재현 방식을 환기할 기회를 마련하리라 기대한다.

한편 갤러리 아라리오 천안은 이번 전시와 더불어 청소년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동시대 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 예술 기관으로서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 향유, 창작,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천안교육지원청과 협력하여 청소년들에게 다소 생소한 ‘큐레이터’ 직군에 대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참가 문의 : http://www.ggoomgil.go.kr, 041-640-6265)


● 작가 소개

1943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난 손수광은 1955년 서라벌 예술대학(현 중앙대)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64년 국전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구상회화 작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고, 이후 문공부 장관상을 2차례에 걸쳐 수상하고, 이후 1979년 파리로 건너가 1982년까지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 파리 그랑드팔레에서 열린 르 살롱(Le Salon)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여 금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 밖에 모나코 왕실 미술관의 몬테카를로 국제전시에서 국제박물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한국 서양미술 화단에서는 ‘목우회’ 그룹에서 사실주의 구상회화의 후진양성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갔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학과 교수 및 예술대 학장을 역임했다. 그 밖에, 오늘의 한국미술전(예술의전당),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 서울국제현대미술제 초대(국립현대미술관), 광복 50주년 기념 및 유네스코 50주년 기념전(유네스코 본부, 파리), 한.중 현대미술 교류전(중국 절강성 박물관, 특별실), L.A 아트페스티벌 (로스엔젤레스, 미국) 등 2002년 별세할 때 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지속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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