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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파 같은 세상… 분명한 진실 필요

충청인 | 기사입력 2012/07/08 [13:49]

[칼럼] 양파 같은 세상… 분명한 진실 필요

충청인 | 입력 : 2012/07/08 [13:49]

승용차 안에서 뉴스를 듣는다. 아침부터 반갑지 않고, 알 수 없는 소식들뿐이다. 유럽의 경제위기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이념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전해진다. 핵과 관련된 북한의 얘기도 있다.

해결 기미가 없는 저축은행 사태,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 등에 대한 보도가 이어진다. 사건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뉴스는 끝이 보이지 않고 진실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 뉴스의 말미에 ‘양파 껍질 같은 세상’이라는 기자의 말이 와 닿는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삶이 이리저리 얽히다 보니 단순하게 해결되는 문제가 없다. 정치 문제는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사회 문제는 곧 경제 문제가 되어버린다.

사소하게 시작된 것도 범위와 깊이가 넓어지며 그 속을 파고들면 들수록 진실은 알기가 어려워진다. 모든 일이 앞뒤가 분명치 않고 진실을 알기 힘들 때 사람들은 양파 같은 세상을 입에 올린다. 게다가 이런 현실은 언젠가 보았던 일, 겪었던 일들인 양 ‘데자뷔’(deja vu·旣視感)처럼 무한 반복된다.

벗겨도 벗겨도 속을 찾을 수 없는 양파의 구조가 우리 사회의 불신(不信)을 상징하는 듯하다. ‘무엇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다.’는 식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런 양파의 무한성과 동그란 모습, 동심원으로 이루어진 모양을 보고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양파의 모습에서 영원불멸의 상징성을 찾았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양파를 들고 신에게 서약하는 벽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들은 죽은 사람과 함께 양파를 매장하면 양파의 강한 향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도 믿었다고 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소공(昭公)이 노()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때의 일이다. 노나라 인근의 소국인 주(邾)나라의 대부였던 흑굉(黑肱)이 자신이 다스리던 땅을 가지고 노나라에 항복함으로써 주나라의 땅이 노나라의 영토가 됐다. 그런데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볼 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 일을 공자는 ‘춘추’(春秋)에 남겼다.

이 기록을 접한 좌구명(左丘明)은 ‘흑굉처럼 지위가 낮은 사람과 사소한 일들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지만 나라의 땅을 들어 임금을 배신한 일은 그 사람의 지위가 낮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역사에 남겨야 한다.

그리고 이름이 나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숨기고, 이름을 감추려고 하는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게 한 것은 모두가 불의한 사람들을 징계하기 위함이다.’라고 덧붙여 진실을 전하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여기서 진실은 덮고자 하면 더욱더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이란 말이 나왔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사람들이 양파의 없는 속을 찾다 보니 때때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감춘다. 나아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찾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불신을 확대 재생산하고 혼란을 더한다.

세상 일에 대해 분명한 진실이 필요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손으로 제 눈을 겨우 가린 채, 하늘을 가렸다고 믿는 어리석음은 남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며 그럴수록 진실은 더욱 큰 무게로 다가온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세상의 모든 일은 바른 이치로 돌아간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엉성해 보이지만, 하나도 놓치는 것이 없다는 노자(老子)의 말이 새삼스럽다. 이것이 양파 같은 세상에서 진실이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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